<집에서 담그는 술… 건강·맛 함께 챙긴다>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술. 기분이 좋아도 마시고 기분이 나빠도 마신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친숙하고 오래된 식품인데, 직접 만들어 마실 수는 없을까. 예전에는 술을 집에서 직접 빚어 마셨다. 집에서 막걸리를 담그면 배고픈 아이들이 술지게미(재강)를 먹은 뒤 취해 돌다니기도 했다. 집에서 담가 마시는 가양주는 직접 만들어 본다는 재미도 있지만, 화학약품을 첨가하지 않아 건강과 맛도 챙길 수 있다. 애주가이거나 애주가를 가족으로 뒀다면 가양주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지난달 27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한국전통주연구소에 들어서자 7명의 수강생들이 진지한 눈빛으로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들은 전통주 연구가인 박록담(47)씨의 동동주 만들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동동주는 한자로 부의주(浮蟻酒)라고 하는데, 이는 술구더기(浮蟻)가 ‘동동’ 떠 있는 모습 때문이다.
이날은 쌀을 찐 뒤 식혀서 누룩과 섞어 보관하기까지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수강생들은 쌀을 찌는 시간과 불의 강약 조절 외에도 찐 쌀을 식히는 요령 등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빨리 식히고 싶은 마음에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면 술을 망치게 됩니다. 쌀의 표면이 바람에 직접 닿으면 딱딱하게 굳기 때문에 나중에 누룩과 섞어놓아도 쌀이 그냥 굳은 채로 있죠.” 강사와 수강생 모두 손으로는 찐 쌀을 펼치면서 입과 귀는 쉬지 않았다.
수강생 송은주씨는 “술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며 “음식 만들기보다 훨씬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박씨는 “음식은 만든다고 하지만 술은 빚는다고 한다”며 “음식은 재료와 방법이 좋으면 결과도 좋지만, 술은 효모가 만드는 것이라서 좋은 결과를 내기 더 어렵다”고 대답했다. 사람이 직접 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효모가 잘 만들 수 있게 도와야 하는 것이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뜻.쌀을 누룩과 섞는 순서다. 쌀이 뭉개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몸에 무리도 가지 않게 하는 방법이 전수됐다. 보통 손으로 위아래를 뒤섞는데 이렇게 하면 무겁게 눌어붙는 덩어리 때문에 팔목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이때는 팔꿈치를 편 상태에서 허리 힘을 이용해 손바닥 아래의 넓은 부분으로 눌러주면 된다.
잘 섞인 쌀과 누룩은 발효에 들어간다. 실습장 주위에는 흰 종이로 덮은 항아리들이 눈에 띄었다. 술 익는 냄새를 맡고 모여든 날벌레들이 흰 종이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수강생들의 신청 이유도 가지가지다. 한양대 식품영양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백현남씨는 “요리에 관한 옛날 책(고요리서)를 보면 술을 빚는 부분이 너무 간단하게 서술돼 있어서 실제로는 어떤지 알아보려고 왔다”며 “술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이 아니라 공부하면서 든 호기심을 풀어보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송씨는 단골 손님에 한해 직접 빚은 술을 제공하고 싶은 생각이다.
멀리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만학의 열의를 불태우는 중년 남자도 있었다. 이민형씨는 “책을 보고 만들어 봤는데 맛이 제대로 안 나와서 직접 해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빚는다’는 표현은 도자기 등에 쓰일 정도로 왠지 숙련도와 큰 노력이 떠오른다.
그러나 열성적인 수강생들은 술을 빚는 어려움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였다. 수강생 신영구씨는 “집에서 누룩을 띄우고 있는데, 곰팡이가 피고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관찰하다 보면 마치 화분에 심은 작은 씨가 자라는 것을 보는 것 같아 신기하다”며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접 빚어 보고 싶을 것”이라며 웃었다. (02)389-8611∼2
글 안두원, 사진 이종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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