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이사람]"우리 술 향기·맛에 취해보세요”
전통주 제조법 책 낸 박록담씨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이 자신의 연구소에서 전통주의 재현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전통술을 문헌의 처방 그대로, 심지어 술을 빚는 절기에 맞춰 제조하는 엄격한 재현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렇게 1년에 걸쳐 만들어낸 우리 술 중 어떤 것은 술 위에 고두밥이 하얗게 떠올라 마치 흰 배꽃이 술잔 위에 피어있는 듯 아름다웠고, 또 다른 어떤 것은 웬만한 서양 술이 따라오기 힘든 다양한 빛깔과 과일 향으로 술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최근 전통주 제조법이 담긴 고서를 발굴, ‘양주집(釀酒集)’으로 펴낸 박록담(47)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은 잊혀졌던 우리나라 전통주를 재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이 책에는 지금까지 문헌은 물론 민간에서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은 우리의 전통주인 하시주, 모미주, 서향주, 피모소주, 우피모소주, 백오주 등에 대한 설명과 그 제조법이 담겨 있다.
“안국동에서 고서점을 운영하는 이윤후 선생이 우연히 입수한 책을 건네줘서 이번에 그 책을 바탕으로 실제로 양조를 하면서 제조법을 재현하게 됐습니다. 이 고서에 따라 양조 과정을 재현하면서 이토록 다양한 술을 개발한 우리 선조의 능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재현된 우리 전통주 중에는 서양 맥주와 같이 겉보리로 만든 ‘모미주’라는 술이 있었다는 것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 박 소장은 “이 모미주는 맥주의 톡 쏘는 맛보다는 숭늉이나 보리차 같이 구수한 맛이 일품”이라며 “모미주를 증류한 ‘피모소주’와 ‘우피모소주’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하고 그 양조법을 재현한 것도 적지 않은 성과였다”고 설명했다.
20여년간 전통주를 연구해 온 박 소장은 사실 1984년 신춘문예와 문학지 등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그는 술을 즐기던 집안 분위기 속에서 전통주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오면서 지금까지 400여종에 걸친 우리 전통주를 재현했다. 60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전통주 중에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40여종에 불과하다. 박 소장은 이미 사라져버린 우리 전통주의 명맥을 잇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양주집 발간도 이런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것.
전통주와 관련한 재현 작업과 동시에 함께 관련서적을 계속 펴내고 있는 그는 지난 상반기에는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기획도서인 ‘문배주’를 펴냈으며 조만간 술을 빚는 재료와 누룩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도 써낼 계획이다.
“우리 전통주는 쌀과 누룩과 물, 세 가지 재료만으로 향기와 맛이 서로 다른 술들을 다양하게 빚어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따라 색과 맛, 향이 천변만화합니다. 죽과 백설기, 구멍떡, 범벅, 고두밥, 인절미, 개떡, 송편 중 어떤 방법으로 재료를 빚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또 50여 가지 다른 누룩의 작용에 따라 엄청난 변화를 보입니다. 이와 관련한 책도 펴낼 생각입니다.”
“술이 황금빛으로 찰랑거리며 온갖 과일향기를 뿜어낼 때 술 빚는 보람을 느낀다”는 박 소장은 우리 술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부족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우리 술은 김치에 못지않은 전통 먹을거리입니다. 다양한 연구와 학술적 뒷받침이 있어야 우리의 훌륭한 전통주를 세계에 널리 보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임정빈 기자 jblim@segye.com
2005.09.29 (목)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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