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권하는 전통주 한 잔
<전통주>, 전국의 전통주와 술 빚는 방법까지 소개
권춘오(pipal73) 기자
▲ 전통주
ⓒ 대원사
남태평양 사모아의 작은 섬에 살다가 선교사를 통해 처음 서구 문명을 접한 투이아비 추장은 술을 '썩은 물'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그의 순수한 눈에는 왜 멀쩡한 사람들이 썩은 물을 마시고 스스로 이성을 상실할 만큼 고주망태가 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이 순수하다고 해서 그의 시각이 전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측면 중에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그 폐해에 대해 반성하고 고치는 계기로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인 듯하다.
술은 적당히 잘만 마시면 몸에 좋고, 간혹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도 쓰인다. 음식에도 아주 요긴하게 사용된다. 청주 한 술 들어가 음식이 그만큼 더 풍성해지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실 썩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술에 대해 딴지를 걸 수는 없다. 썩은 음식이 한두 가지인가? 젓갈, 치즈, 된장, 김치, 그리고 홍어회는 엄밀하게 말하면 썩혀서 만든 최고의 음식들이다.
투이아비 추장의 눈에는 '왜 이런 책이 나올까' 하고 의아해하겠지만 술에 관심이 있거나 술꾼인 사람들에게는 솔깃한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전통주>(박록담 지음, 대원사)다.
이 책은 안동 소주, 김천 과하주, 진도 홍주 등 각 지역별로 이름난 명주를 중심으로 그 빚는 방법을 소개하고 그 맛과 향기, 효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또 이러한 전통주를 직접 빚어볼 수 있도록 누룩 준비에서 술을 빚어 거르고 소주를 내리는 전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어 '한번쯤 술 한번 만들어 봐야지' 하고 생각만 했던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정보를 준다.
화끈한 맛으로 유명한 진도 홍주를 마셔본 사람은 많겠지만, 진도 홍주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선 홍주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자. 그 유래설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고려 말엽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러 진도에 온 몽고군에 의해 전해졌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조선 중엽 진도 고군면으로 낙향한 허대(許垈) 선생 집안의 가양주가 전해졌다는 설인데 후자를 토대로 홍주의 전통성이 부여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의 하나인 홍주의 붉은 빛깔, 그것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30∼50일 정도의 긴 발효 기간을 거친 뒤에 소줏고리로 증류를 할 때, 떨어져 내린 소주가 소줏고리의 귓대 밑에 놓은 단지 위의 뿌리식물 생약재인 지초(芝草)를 통과하면서 순간 착색되어 붉은 빛을 띠게 된다.
이밖에도 이 책은 서울,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이북 지방의 전통주를 자세히 소개하고 각 술의 다양한 맛과 향, 계절 감각과 풍류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 술의 특징은 향이 깊고 순한 듯하면서도 은근하게 올라오는 취기로 인해 술을 마시는 홍취가 있으며, 숙취가 없이 빨리 깨고 뒤끝이 깨끗한 데 있다고 말한다.
또 "옛사람들은 술이 갖는 고유한 풍미(風味)를 즐기고자 했고, 각종 약재를 넣어 건강을 도모하는 식품으로도 많이 이용했으며, 술을 통해 일월순천(日月順天)의 자연관을 노래해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삼한시대 이래로 전통적인 비법을 가진 술들이 빚어져 왔고, 조선시대에는 수백여 종에 달하는 술들이 있었다. 그러니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수많은 전통주들이 급속하게 몰락했다. 일제가 가정에서 빚는 전통주를 밀주로 단속했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 이후부터 근래 가정에서의 제조허가가 풀리기까지 서양 술의 대량 유입과 정부의 통제 정책으로 인해 전통주가 맥을 이을 수 없었다.
저자는 한국의 전통주는 빚기에 깃든 다양성과 계절성, 약리성에 있어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주의 명맥이 상당 부분 끊겼기 때문에 이제 입과 문헌을 통해 다시 그 맛과 향을 복원시키고 있다는 점은 뿌듯함, 기대감과 함께 서글픔과 불안감을 교차시킨다.
그것은 문화는 살고 먹고 입는 것인데, 어느 하나 우리 것을 제대로 지켜내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나오는 서글픔이다. 또한 특별한 형체를 갖추지 않은 것일수록 복원이 더 힘든데 - 어떻게 보면 거의 불가능한 - 과연 현대인의 입맛으로 조상들의 입맛을 되살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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