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몸담고 있던 군문에서 정년퇴임을 하여 빈 가슴에 바람을 안고 토끼가 방아 찧고 다람쥐가 발 맞추어 사는 하늘 길 닿는 산촌에서 자연과 적막을 벗하며 조용히 살고 있다.
산골에 사는 덕분에 텃밭에 풍성하게 자란 무공해 푸성귀를 산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도 생겨나고 이웃간 정도 훈훈하게 느끼며 산다.
‘주력이 국력’이라고 취중에 건배를 제의할 정도로 술꾼인 나에게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집으로 가는 길목에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 500년을 살고 있는 마을이 있다는 것이다. 선비의 기풍이 서리고 청렴의 뜻이 밴 가양주로 전승돼온 호산춘(湖山春)을 빚어내는 장수 황씨 산북종택이 있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진정한 애주가는 좋은 벗을 안주로 삼는다는 말이 있듯이 가끔 문우들과 풍류를 즐길 수 있어 그 멋과 맛에 취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삶이란 물질적인 가치가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요소에 의해 얼마든지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하겠다.
호산춘은 적당한 도수에 향기롭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솔잎이 들어가 약리효과도 뛰어나다. 술이 약한 사람도 달콤하고 깔끔한 맛에 잔을 놓기가 어려운 매력적인 술이다. 좋은 술이 그렇듯 숙취도 없다. 10여년 전 외국의 국빈급 손님 접대용으로 청와대 만찬 행사에 쓰기 위해 보안요원이 직접 서울에서 내려와 가져가기도 했을 만큼 기품있는 술이다.
문경새재의 비경과 500년을 내려온 가문의 혼이 담긴 명주가 곁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우리의 전통 민속주가 일제 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많이 사라졌으나 이같은 명주를 500년 동안 지켜온 황씨 문중에 경의를 표한다. 중국 당나라의 시성 두보는 ‘신이 만물을 창조했지만 인간은 위대한 술을 빚어 냈다’고 했다. 그 찬사를 황씨 문중에 드리고 싶다.
명주가 있는 산골은 외롭지 않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호산춘을 나눠볼 것을 권한다.
문경새재 자락에서 솔바람, 맑은 물 소리를 들으면서 황희 정승의 청렴과 선조들의 얼을 되새기며 수백년 세월이 살아 숨쉬는 그 솔향 짙은 호산춘 주기에 단청 빛으로 취해 천금보다 귀한 내 영혼의 시심을 찾아 헤맨다.
〈강상률 시인〉
-경향신문 2005.06.29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