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가 다가오면 우리 조상들은 가장 먼저 수확한 쌀로 신도주(新稻酒)를 빚어 차례상에 올리고 손님 대접도 했습니다. 추석 때만 맛볼 수 있는 이 술은 다른 전통주와는 빚는 방법이 달라 재료에 비해 술의 양이 많고 알코올 도수도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20년간 전통주를 연구해 온 박록담(46)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우리 전통주는 쌀과 누룩과 물, 세가지 재료만으로 향기와 맛이 서로 다른 술들을 다양하게 빚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재현한 제조법을 쓰면 같은 쌀로 만들어도 연꽃향, 사과향, 자두향, 매실향 등 갖가지 꽃향기와 과일 향기가 나는 수백가지 종류의 술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전통주는 600여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껏 전해지는 전통주는 경주 교동법주와 해남 진양주 등 40여종에 불과하다. 박 소장이 재현한 전통주는 400여종에 이른다.
연꽃 향기가 은은한 하향주(荷香酒), 눈꽃이 피어 있는 것과 같다 해서 이름 붙여진 백화주(百花酒), 차마 삼키기가 아깝다고 해서 이름 지은 석탄주(惜呑酒), 매실향 속에 톡 쏘는 맛이 있는 호산춘(壺山春) 등.
박씨가 이름만 들어도 운치있는 전통주 재현에 몰입하게 된 것은 단순한 동기에서 비롯됐다.
“유난히 술을 좋아하던 부친을 위해 좋은 술을 빚는다는 곳을 방방곡곡 찾아다녔습니다. 냉대를 무릅쓰고 다양한 전통주를 빚는 비법을 하나하나 익혔습니다.”
박 소장이 20년간 전통주를 빚기 위해 들인 쌀의 양만 해도 5t 트럭 16대분, 90t에 이른다고 한다.
“부친과는 달리 체질적으로 술에 약해 소줏잔으로 3잔만 마시면 쓰러집니다. 하지만 술을 재현할 때마다 숙취 테스트를 하기 위해 900㎖ 한병을 단번에 마시고 자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재현해 낸 전통주들은 일본 청주에 기반한 시중 청주나 민속주와는 달리 향기가 좋으면서 약간 달짝지근한 게 특징이다. 술이 달면 많이 먹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이미 건강을 생각한 조상들의 웰빙 비법이 아니겠느냐고 박 소장은 말한다.
그는 이렇게 익힌 전통주 제조법을 그의 연구소를 통해 전파하고 있다. 박 소장으로부터 전통술 제조법을 익힌 사람은 지금까지 3000명을 헤아린다. 갈수록 배우는 층의 연령이 낮아지고 남자들의 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박 소장은 “우리의 전통주는 만드는 방법도 의외로 쉬워 누구나 약간만 관심을 가지고 배운다면 시중의 어떤 술보다 향기롭고 운치있는 전통주를 만들어 가족, 벗들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집에서 담근 전통주를 개인이 팔 수 있도록 법적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럽인들이 와인과 위스키, 맥주 등 세계적인 술을 만든 것은 대부분 가내수공으로 빚어왔기 때문이다.
전통주에 관한 한 통달한 듯한 박 소장은 1984년 신춘문예와 문학지 등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그는 “그동안 술을 그렇게 많이 빚으면서도 술을 주제로 한 시를 못 썼던 것이 아쉬워 조만간 술을 주제로 한 시를 빚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임정빈기자/jblim@segy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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