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프랑스산 햇 포도주가 물을 건너 한국으로 들어왔다. 불어로 새 것을 뜻하는 '누보', 즉 새로운 보졸레라는 '보졸레누보'가 바로 그것이다. 11월 세번째 목요일을 기해 전세계에 동시에 판매되는 이 이벤트성 포도주 한 병에 한국언론이 열광하고 있다.
사실 '보졸레누보'가 우리에게 깊이 다가올수 있었던 데는 언론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몇해 전부터 언론은 이맘때만 되면 보졸레누보의 판매 소식을 전했다.
특별한 날에나 포도주를 호사로 여기며 마시는 일반 서민의 눈에 보졸레누보는 대단한 와인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 유명한 '프랑스 와인'이니 말이다. 이러한 보도로 인해 보졸레누보는 한국에서 꽤나 유명한 와인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언론의 이러한 보도 태도를 두고 비판의 소리도 터져나왔다. 정작 본토나 와인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혹평을 면치 못하는 데, 유독 우리언론은 왜 그리 홍보에 열을 올리냐는 것이다.
올해 보졸레누보의 출시일은 11월 20일, 이 때를 즈음에 언론은 보졸레누보가 출시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단순히 출시만을 알리는 보도와 더불어 평소 흔치 않던 와인에 관련된 기사를 대폭 늘였다.
18일자 주간동아는 <매력 만점 포도주 와인은 문화상품>이라는 기사를 통해 와인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전하며 '가을, 와인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를 권유하며 기사를 마무리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21일자 주말섹션 <"포도, 와인만 있나? 화장품도 있다!">를 통해 '포도씨의 성분이 피부 독성을 없애고 세포를 재생한다'고 말하고 있다. 기사 말미에는 은근슬쩍 20일 보졸레누보도 출시가 되었다는 것을 끼워 넣는다.
같은 날 한국일보는 한발 앞장서 보졸레누보를 얼굴에 발라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와인스케일링'을 소개하면서 프랑스에서 인기있는 피부관리법이니 잘 따라해보라는 식으로 자세한 방법까지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보졸레누보에 대한 비판적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전문가들에 의하면 보졸레누보는 맛은 없다' 내지는 '보졸레누보는 상술이다' 정도의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맛을 강조하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언론은 병뚜껑부터 따기 전에 올해는 이상고온으로 '최고 품질 될 듯'(한국일보)내지는 '와인 품질 향상 도움'(파이낸셜 뉴스)등으로 햇 와인인 보졸레누보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았다.
▲ 18일<중앙일보>에 실린 '보졸레누보'판매업체 사장과의 인터뷰 기사
한술 더 떠 아예 와인판매 업체의 대표를 인터뷰한 기사도 눈에 보였다. <주간한국>과 <중앙일보>는 며칠 터울로 보졸레누보를 판매하는 판매회사의 사장을 만나 그의 와인에 대한 철학(?)을 심도있게 다루며 "부드럽고 육감적인 맛이 될 것" "와인 대중화 위해 가격파괴 주도"하고 있다는 홍보에 지면을 할애한다.
이러한 보졸레누보에 대한 보도 행태를 보면 우선 한달 여 전부터 <한달뒤 만나요, 보졸레 누보>(10월 23일 한겨례), <신선한 맛 '햇와인' 기다렸다/내달 20일은 '보졸레누보 데이'>(10월 25일 세계일보), <보졸레 누보, 내달20일 전세계 동시판매/가을 끝자락서 佛 햇와인 한잔… 낭만을 예약하세요>(10월 25일 한국일보)를 내보낸다.
그리고 보졸레누보 출시를 앞두고는 각 호텔과 백화점의 보졸레누보 행사 및 예약 개시 등을 보도한다. 물론 여기에는 '예약을 하면 몇 천원 할인된다'는 정보도 포함된다. 출시가 더욱더 임박해 지면 <보졸레누보 "한국 불황 맞아?">(11월 13일 대한매일), <프랑스 産햇와인 '보졸레 누보' 불티>(11월 10일 해럴드 경제)기사가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보졸레누보 '공수작전' 항공2社 특별기 10여편 투입>(11월 13일 경향신문)과 <보졸레누보 95만병 긴급공수>(11월 13일 한국일보)등의 기사를 통해 요원의 불길에 당신도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물론 비싼 운송비 등으로 인해 현지에서 6000원 가량에 판매되는 보졸레누보가 한국에서는 2만원을 껑충 뛰어넘어 몇 번이나 뻥튀기되어 판매된다는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외국 와인에 대한 언론의 이러한 집착에 우리술 제조가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전직 언론인이자 현재 한국전통주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는 박록담씨는 "양주회사의 홍보와 대중매체의 선동, 수입판매 업체의 전략에 넘어가는 꼴"이라고 보졸레누보를 꼬집는다.
박 소장은 전통주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서 "전통주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으며 있더라고 거의 짜맞추어진 보도"라며 "대기업에서는 언론을 통한 홍보에 열을 올리지만 영세 전통주 업체는 그럴 형편도 못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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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규 기자 (hellojm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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